사귀자는 첫 프로포즈, 제안을 받았을때는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두번째 진짜 프로포즈는 오히려 '언제하려나' 열심히 목빠지게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상견례도 해버렸고 결혼날짜도 잡았는데
프로포즈를 안하니깐..  내심 초조하고 섭섭하기도 했죠.
결혼한다니깐 다들 '프로포즈는 어떻게 받았어?'라고 물어보는데 할말도 없고 -.-;

때는 4월 25일이 시작되는 밤 1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잠들기 직전, 침대에 누워 전화를 했습니다.
수영 : 오빠, 자?
문철 : 아니.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오세요~

호호~ 사실 약간 기대를 하긴 했었습니다. 왜냐면 4월 25일은 나의 생일이니깐.
그래두. 올거면 귀뜸이라도 해줄것이지..
화장도 안한 푸석한 얼굴에 머리 질끈 묶고 가디건 하나 걸치고 총총 아파트를 내려갔습니다.

빨간 오빠 차앞에 갔는데, 오빠가 황급히 숫자 50을 세고 오라고 했습니다.
천천히 50까지 세고 차에 갔더니.
와~ 내가 좋아하는 딸기 케익에 생일 촛불이 반짝반짝. 초가 11개니깐 정말 밝더군요. ^^;
케익을 차위에 올려두려고 했는데, 바람이 휙~ 불어서 다시 불을 밝히느라 고생을 했더라구요. ㅋ
이게 첫번째 선물. 야심한 밤에 야금야금 달콤한 케익을 나눠먹고~

두번째 선물은 오빠답지 않은 화려한 포장의 29송이 장미+ 한송이 장미.
스무살 생일에 장미를 못받았을 것 같아서 샀다고 하더라구요^^
화려한 장미를 좋아하진 않지만..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일을 나를 위해서 했다니.. 살짝 감동~

세번째 선물은 내가 넘넘 좋아하는 작은 들국화 한다발.
오빠답고 내가 좋아하는 들꽃같은 자연스러운 꽃.

그러고선. 뿌시럭뿌시럭 주머니를 뒤지더니, 은반지 하나를 꺼냈습니다.
문철 : 이거, 내가 10년동안 껴온 성결서약식 반지야. 나의 순결을 드릴께요. 받아주실래요?
수영 : 네~! 당연하죠.

그리고 오빠는 저의 손에 자신의 성결서약 반지를 끼워주고 꼭 안고 기도해줬습니다.
"하나님. 저는 수영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 우리가 만나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 이 기도가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너무 감동했었나봐요^^;;

5천원도 되지 않는 싸구려 은반지이지만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저를 향한 마음이 너무 예뻤습니다.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전혀 부럽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흠집이 나고 약간 구부러지기도 했지만 그 반지와 함께해 온 시간과 오빠의 삶 만큼
세상 어느 반지보다 소중하고 예쁜 반지입니다.

20대의 마지막 생일날, 싱글의 마지막 생일날 받은 감동적인 프로포즈~
결혼해서 살면서도 가끔은 특별한 프로포즈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음번 프로포즈는 제가 먼저 선수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리 : 최수영
:

300일이 좀 모자라는 우리의 사귐은 오빠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몇 달에 한번 씩 만나온 우리.
지난번 만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오빠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주 짧은 문자로.
문철 : 잘지내니?
수영 : 네. 잘 지내요. 아프리카 떨어진거만 빼고ㅠㅜ
문철 : 잘됐네. 얼굴 한번 보자
수영 : 잘되긴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ㅠㅜ
문철 : 그래도 내건 좀 다른데
수영 : 흥~ 어쨋든 만나서 영화를 보든지 산책해요
문철 : 그래요 산책도 좋아요

이런 문자가 오가고 선유도에서 만났습니다.
오빠답지 않게 아프리카에 못가게 된 저에게 잘됐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뭐야? 다른 마음있는거 아냐? 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

어쨋든 합정역(와~ 지금 우리의 신혼집이 있는 동네)에서
치킨 한마리와 맥주 500cc 사들고 선유도를 산책했습니다.
아주 천천히 걷고,
그것도 모자라서 양화대교를 건넜습니다. 걸어서 걸어서.
아~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하는 오빠를 외면하고
애써 다른 화제를 돌렸습니다.
어색하고 멀고 먼 양화대교를 건너오면서 몇번이나 이야기를 꺼내려는 오빠를 막느라 힘들었습니다.
오빠는 계속 말하느라 힘들었겠지? ㅋㅋ

갑자기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워서 결국 우리집까지 왔습니다.
8년을 알아오면서 이렇게 말없이 어색해하면 같이 한 시간은 처음이었습니다.

결국 아파트 앞 벤치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수영이는 참 좋은 사람이고, 우리의 관계도 참 좋았던 것 같아.....
(뭔가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해주었는데..  잘 기억은 안나네요)
이제 오빠 하지 말고, 애인해 보는거 어때요? 한번 차근차근 생각해봐요."

직감으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두 귀로 들으니,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아. 아름다운 오누이 관계를 이렇게 만들다니.. 속으로는 어떻게 잘 거절할까 라는 생각하면서
"네. 그럼. 좀 생각해볼께요"라고 말했습니다.

아~ 어색하게 돌아가던 오빠의 뒷모습.

흥~ 뭐야 프로포즈를 하려면
내가 너무 좋다는 멘트라도 해주거나,
혹은 좀 비싸고 분위기 있는대서 맛있는 거라도 사주던가? 해야지.
이건 정말 프로포즈가 아니라, 아~~주 이성에 호소하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러고 일주일 뒤에 '예스'를 했습니다.
갑자기 오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생긴 건 아니었습니다^^

이 당황+황당했던 제안을 받을 때.
수영은 아프리카 가려던 것이 좌절되면서
정말 결혼을 해서 하루라도 빨리 함께 나가고 싶다는 꿈을 꾸며
제게 꼭맞는 배우자를 만나고자, 제 생애 가장 많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아온지 8년만에 첨으로 이런 제안을 하는 오빠에게 '노'라고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오빠에 대한 신뢰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만약에 잘 안되더라도
소중한 가르침을 갖게되는 시간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시작한 모험이었죠.

지금은
아프리카에 가려던 것을 좌절시키시고
또 결혼에 대해 기도하게 하신 (어떻게 보면 정말 연결안되지만, 저에게는 절실했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큰 좌절이 없었다면, 절대 결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질 않을 저였으니깐요.

그리고
윤희언니가 제시했던 5가지 기준도 '예스'라고 이야기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가운데, 세가지 기준에 충족되는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더라는 말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도 참고해보세요.
center -Christ (마음 중심에 같은 하나님이 있는가?)
communication (대화, 특히 위기시에 적절히 대화할 수 있는가?)
culture (살아온 배경, 문화가 어울리는가?)
character (성격이 조화되는가?)
chemistry (만났을때 찌릿한, 감정적인 동요가 있는가?)            ....적어도 3가지는 맞는거 같더라구요^^

두번째. 정말 황홀하고 아름다웠던 프로포즈는 다음에 계속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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